본문 바로가기
⛪ 신앙/설교 정리 묵상

고린도후서 4:1~6절 | 영광스러운 직분에 초대받은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by pisteuo 2024. 4. 16.
반응형

2024.4.16 화 새벽예배

 

 

 

3장에서는 옛 언약의 증인과 새 언약의 증인에 대해 말했다. 

옛 언약의 증인도 영광스러웠는데,

새 언약의 증인은 얼마나 영광스럽겠느냐

수건을 벗고 진정한 자유와 진리의 때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4장은 ‘그러므로’ 라고 하며 시작한다. 

이 영광스러운 직분에 초대 받은 사람들이 어떤 모양으로 응답할 것인지를 볼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응답을 보여야 하는가?

 

 

 

1. 은혜 안에서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

(1절)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원문은 ‘긍휼하심을 입음으로 직분을 받았다’고 말한다. 

직분은 하나님의 은혜 덕이다

 

 

반대되는 경우도 보여준다

(3절)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절)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복음을 아무리 전해도 가리워진 자들이 있다. 사탄 마귀의 세력 때문이다. 믿지 않은 자들의 마음이 혼미하게 되었다. 

복음의 광채가 비추어지지 못한 자들이 있다.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6절)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연약한 우리였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셨다 

나에게는 공로가 없다. 

얼마나 큰 은혜였는가? 감사가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않을 것이다.

(1절)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1) 우리가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나의 신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를 보물을 담은 질그릇과 같다고 말한다. 

 

낙심하지 않음으로 부르심을 나타낼 수 있다 

 

2) 은혜로 시작된 삶임을 알았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을 수 있다

나를 앞세우고 내가 무언가 하려할 때 은혜가 아닌 낙심이 찾아온다.

종교심에 빠질때 나타나는 낙심이다.

 

사역도, 사역을 하는 것에서 조금 나와서 하나님 그분을 바라보도록 힘써보라.

그분이 일하시도록 해보라. 

그게 은혜 받은자들의 태도이다. 

 

 

주 안에서 열심을 내는 것과

내 의지로 하려 하는 것은 

한 끗 차이다.

 

 

3)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임을 믿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을 수 있다

낙심한다는 것은, 이 직분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완성하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빌 1:6

 

낙심이 찾아올 때마다 바라볼 것은 내 부족함이 아니다.

마침내 완성시킬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럴 때 소망이 생긴다. 

 

 

나는 왜 할 수 없을까?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될까? 라고 생각할 때
마침내 완성시킬 하나님을 바라보라!

 

 

 

힘겹고 버겁다고 느껴지고 말하는 것. 

은혜를 다시 구하며 

낙심하지 않는 믿음이 나타나기를.

 

 

 

2. 과거를 버려야 한다

과거의 부끄럽고 거짓된 일들을 버려야 한다. 

 

(2절)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내 발목을 잡는 모든 것들을, 내 옛 죄악의 습관들을 버려야 한다. 

죄를 이기는 것은 은혜로 이기는 것이지만

그 은혜는 내 결단과 함께 역사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 결단이다. 

 

버리지 않으면 그것은 걸림돌이 될 것이다

처음엔 주님을 향해 열심을 내다가도

나중에 믿음을 잃어버리는 자들도 더러 있다. 

왜 그렇게 좌절하고 회의감을 빠지게 되는 것일까?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사실은 옛 삶을 버리지 않았기 떄문이다. 

교회에서 번듯하게, 삶에서 번듯하게 사는 듯 보이지만 

옛 삶을 버리지 않았기에 괴리감 있는 삶을 살게 된다. 

스스로 괴리감에 빠지게 된다. 

 

신앙을 다 경험하지 못한 채 종교인이 되어버린다. 

 

당신은 신앙생활이 기쁘십니까? 

큰 비전이 있고 어마어마한 거룩을 이루어내는 그런 것을 말하는게 아니라

우리 신앙생활이 기쁜지? 

그렇지 않다면 내 안에 과거를 버리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왜 새 피조물의 삶을 살지 못하는가?
분명한 마음의 정함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연약해서 옛 삶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마음에 정함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은혜의 길로 마음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에 옛 삶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지금도 숨은 부끄러운 삶을 사는 자들이 많을 것이다. 

아직도 부끄러운 삶을 버리지 않았기에

믿음의 확신이 갉아 먹히고 있다. 

 

실패감에 싸이게 되고

상급을 놓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부끄러운 일을 청산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이 참 필요하다.
옛 삶이 끊어지지 않아 괴로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3. 진리를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스스로를 추천한다고 한다.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다

 

(2절)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다. 

무엇을 위한 부르심인가?

 

 

바울은 말씀을 왜곡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말씀을 혼잡하게 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 자들이다. 

내 경험으로 말씀을 왜곡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잘못된 신앙의 대토와 관습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도 있다.

떄론 내 이성이 납득되는 대로만 말씀을 제한해서 전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데에 있어서 온 힘을 다해야 한다. 

 

 

(5절)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전해야 합니다

자기 삶에 주인이 없어서 방황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예수님이 그들의 주인 되신다는 것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은 이런 것이다. 

 

좋은 것을 전하는 것이니

부끄러울 필요가 없다.

 

 

바울은, 자신이 종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종 되었음을, 섬기는 자가 되었음을 전파하라. 

나의 신분과 사명을 증거하라. 

“나는 여러분들을 위해 왔습니다”

 

 

예수를 믿었다는 것은 이와 같이 사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라.
내 삶을 통해서 보여주라.

 

 

 

피곤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순종하고

내 삶이 바쁘지만 주를 위해 순종하는 것. 

 

고전 4:16

바울은 본인이 종으로 사는 것을 보여주면서, 똑같이 살라고 말한다. 

 

 

 

 

혹, 나에게 제자가 세워지지 않는 이유는
내가 순종하고 종된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