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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신앙의 인물들 👨‍🦱

조만식 장로님 인물연구 | 평양 산정현 교회 장로 고당 조만식 선생

by pisteuo 2022.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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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방문할 일이 있어서 다녀오는데

통일전망대에 세워진 조만식 장로님의 동상을 보며

또 장로님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듣게 되며

여러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어느 것 하나 남김 없이

모든 것을 드리신 분, 조만식 장로님

 

그리스도인으로서 빛이 되어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기념이 되시는 모습이

감격이 되었다

 

이러한 기회로

조만식 장로님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두려 한다

 

 

조만식

 

1. 조만식 장로님은 누구신가?

조만식 장로님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수훈자로서,

조국을 위해 한 몸 기꺼이 바치신 자랑스런 그리스도인 이시다.

 

조만식 장로님은 188321일 평남 강서군에서 나셨다.

평양숭실중학교와 일본 메이지(명지)대학 법학과 졸업 후

많은 독립지도자가 해외로 떠나버린 이 고난의 땅에서 애국애족 활동을 하셨다.

 

3.1 만세운동 후 투옥되었었고,

그 후엔 정주 오산학교의 교장으로 계셨다.

 

주기철 목사님이 시무하셨던 평양산정현교회의 장로님이셨다.

 

일제강점기 때엔 민족을 일깨우고 일제에 대한 비폭력저항 운동을 펴셨다.

 

해방 후 북한의 민족영도자로 조선민주당을 창당해 자유민주 통일국가를 건설하려고

소련군성과 공산당에 맞서 싸우다 끝내 순국하셨다.

 

남한으로 넘어오라는 많은 지인들의 설득과,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남한으로 넘어간 상황이었음에도

북한동포를 버리고 나만 월남할 수는 없다던 결심을 선생은 죽음으로 지키셨다.

그것이 1950년의 일이다.

 

그렇게 순교하시기 전까지

북한의 김일성이 조만식 장로님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설득하며 애썼지만

조만식 장로님은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김일성에 의해 평양에 가택연금되었다.

그리고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체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만식 장로님은 1970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으셨다.

 

 

 

2. 조만식 장로님과 오산학교

오산학교는 19071224일에 남강 이승훈 선생께서 세우신 학교이다.

이 때 그분의 나이는 44세 이셨다.

 

하지만 105인 사건으로 감옥에 가게 되셨고, 그 공석 기간에 오산학교의 교장으로 초빙되신 분이 바로 조만식 장로님이셨다. 조만식 장로님은 이제 막 메이지대학을 졸업한 후 민족운동과 교육 운동에 헌신할 마음을 품고 준비하고 계시던 중이었다.

 

처음엔 3개월만 오산학교에 머물며 학교를 수습하기로 약속을 하고 왔으나,

9년간이나 교장으로 학교를 이끌어 가시게 되었다.

 

특히 그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모범을 보이며

학생들이 검소한 생활과 규율 있는 생활을 배워가도록 이끌었다.

 

 

 


 

  

3. 조만식 장로님과 주기철 목사님과의 관계

조만식 장로님이 오산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계실 때,

주기철 목사님은 그 학교 학생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후

조만식 장로님은 자신이 섬기는 평양 산정현 교회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제자였던 주기철 목사님을 담임목사로 청빙하셨다.

제자를 지도자로 모시겠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더 놀라운 일화가 있다.

 

그렇게 주기철 목사님께서 산정현교회를 담임하게 된 후

어느날 조만식 장로님이 예배시간에 늦으셨다.

그러자 주기철 목사님께서는 장로님께 서서 예배 드릴 것을 명하셨고,

장로님은 그 말에 순종하셨다.

그리고 예배 후 장로님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셨다고 한다.

 

조만식 장로님의 신앙과 삶이 어떠하셨는지

가늠할 수 있는 감동스러운 이야기이다.

 

 

 


 

 

4. 고당을 기리는 시

 

세상을 앓던 사람

- 박남수 -

 

검은 두루마기는 무릎을 덮은 일이 없고

당신의 옥 같은 몸은 비단에 감겨본 일이 없다.

한국의 촌부(村婦)가 짠

씨날이 굵은 무명으로도

당신은 족히 자랑을 만들었다.

 

살눈썹에 서리는 자부러움 뒤에서

당신의 작은 눈은 늘 타고 있었고

옳은 일이면 동강 부러질지언정

구불어져 휘는 일이 없었다.

 

오늘 누구도 그니의 생사를 아는 이 없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세상을 앓던 사람

그 육신은 사로잡혀 적(赤)의 볼모가 되었지만

그니가 우리의 둘레를 떠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슴마다 새겨진 그니의 모습은

지워지지 않고 있다.

 

가져다 준 해방의 어려운 터전에

십자가를 스스로 지고

지금 어디서 당신은

은전(銀錢)에 팔려간 형제들을 굽어보시는가.

 

오늘 누구도

그니의 생사를 아는 이없다.

 

철조(鐵條)로 가로질러진 남북 삼천리

잘리고 흩어진 몸 고달픈 형제들도 많지만

당신은 더 멀리 당신은

더 고달픈 어디에서 지금도

머리에 붕대를 감고 세상을 앓고 계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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